가야는 사로국이 막 성장하고 있을 무렵 낙동강 일대의 평야 지대에도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었는데 이를 변한이라고 하는데 가야의 역사는 바로 변한에서 시작되었다.당시 가야에는 왕이 없고 ‘간’이라고 불리는 아홉 명의 대표자들이 다스리고 있었다.어느날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아홉 간이 모두 모였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계속들렸다.“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아홉 간이 대답하기를 “구지입니다”라고 대답하니깐 “하늘이 내게 이곳에 나라를 세워 왕이 되라 하셨다.산꼭대기를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고 노래하며 춤추어라.그럼 왕을 맞게 될 것이다.”아홉 간은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는데 그러자 하늘에서 자주색 줄기가 내려오는데 그 끝을 따라 ..
일제 시대 애국지사들의 항일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김원봉을 중심으로한 의열단(만주 길림성 1919년),김구의 한인애국단(상하이1931년),김창숙의 다물단(베이징 1923년)이 대표적이다.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인애국단은 상하이 임시 정부에 속한 단체인데 대표적인 활동은 이봉창의 일본 히로이토 국왕 폭살을 기도하였고 이어 윤봉길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의 폭탄투척이다.1930년대 당시 일본은 만주를 손에 넣고 중국을 넘보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사방을 돌아보아도 임시 정부의 사업 발전은 고사하고 이를이라도 보전할 길이 막연함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썼을 정도로 당시 임시 정부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김구는 임시 정부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불을 지필 수 있는 아주 ..
우리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시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때이다. 을사조약이란 1905년 을사년에 일본과 강제로 맺은 조약인데 이 조약은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첫 걸음이 된 조약이었다.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이라고 하는 을사조약은 일본의 정치가인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이 맺은 조약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나중에 안중근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으로 일본 수상을 네 번이나 한 인물로 메이지 유신의 핵심인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만나 “폐하,저희 일본 제국의 참뜻을 헤아리신다면 조선의 안년과 보호를 위해 당분간 외교권을 일본에게 맡기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승낙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폐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그러나 만약 거부하시면 일본제국 정부는 이미 결심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직업은 관리였는데 관리가 되려면 과거시험을 보아야 했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합격자는 그 성적에 따라 관직을 받았는데 조선의 관리는 문반과 무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반은 문신이고 무반은 무신인데 문반과 무반을 통틀어 양반이라고 했다.그리고 잡과도 있었는데 통역관,의사,법률가 같은 기술관을 뽑는 시험이 잡과에 해당되었다. 오늘날 최고의 전문직으로 대우받는 의사나 법률가가 조선시대에는 기술관이라하여 문무 관리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식년시’와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실시하는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있었다. 여러 과거시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식년시,식년시 중에서도 문과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문과는 예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