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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직업은 관리였는데 관리가 되려면 과거시험을 보아야 했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합격자는 그 성적에 따라 관직을 받았는데 조선의 관리는 문반과 무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반은 문신이고 무반은 무신인데 문반과 무반을 통틀어 양반이라고 했다.그리고 잡과도 있었는데 통역관,의사,법률가 같은 기술관을 뽑는 시험이 잡과에 해당되었다.
오늘날 최고의 전문직으로 대우받는 의사나 법률가가 조선시대에는 기술관이라하여 문무 관리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식년시’와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실시하는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있었다.
여러 과거시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식년시,식년시 중에서도 문과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문과는 예비시험인 ‘소과’와 본 시험인 ‘대과’로 나뉘었는데 소과에 붙어야 대과를 볼 자격이생기고 대과에 붙어야 비로소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소과 합격자는 ‘생원’ 또는 ‘진사’라고 불리웠고 무과도 소과와 대과로 나뉘는데 소과 합격자는 ‘선달’이라고 하였다.
문과 대과시험은 초시,복시,전시로 나뉘어 초시는 생원,진사 성균관 유생이 응시를 하였다.
복시는 초시 합격자 33명 대상으로 하였고 전시는 갑(3명)·을(7명)·병(23)으로 등급 결정을 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거시험 장원급제를 하게 되면 종6품을 받게되고 나머지 과거시험 합격자는 성적 순으로 7품에서 9품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관직에는 ‘품계’라고 하는 관직의 등급이 정해져 있었는데 품계는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9단계로 나뉘어 졌는데 각 품은 다시 ‘정’과 ‘종’으로 나뉘었다.‘정1품,종1품,정2품,종2품,정3품,종3품····· 이런 식으로 나뉘어 졌다.
정1품이 가장 높고 종9품이 가장 낮았는데 영의정과 좌의정,우의정을 3정승이라고 하는데 삼정승은 정1품이다.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이조판서,호조판서 등의 판서는 정2품이다.
장원급제를 했다고 해서 단번에 높은 관직을 맡는게 아니라 종6품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 가야 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제도는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과거를 통하여 문무 양반제도를 정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의 응시제한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탐관오리의 자제,재가한 여자의 자손,서얼의 문과응시가 제안되었다.
서얼은 양반의 첩으로 서자는 양첩의 자손을 말하고 얼자는 천접의 자손을 말한다.
과거시험 외에도 특별채용제도가 있었는데 관리가 되려면 과거 시험을 보아야 하지만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도 관리가 되는 길이 있었는데 ‘음서’와 ‘천거’가 있었다.
음서는 고려 때도 있었는데 음서라 해도 높은 자리를 준 것이 아니라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처음 받는 것과 비슷한 품계의 벼슬을 주었고 음서출신은 승진에 제한을 받아서 당상관이 될수 없었기 때문에 음서를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과거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
‘천거’는 학문과 덕을 갖춘 숨은 인재를 추천받아 등용하는 제도인데 매년 전국에서 한두 명을 뽑았다.
조선시대에는 문음이라고 해서 2품이상의 고급관리의 자제를 대상으로 무시험으로 관직에 등용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