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직업은 관리였는데 관리가 되려면 과거시험을 보아야 했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합격자는 그 성적에 따라 관직을 받았는데 조선의 관리는 문반과 무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반은 문신이고 무반은 무신인데 문반과 무반을 통틀어 양반이라고 했다.그리고 잡과도 있었는데 통역관,의사,법률가 같은 기술관을 뽑는 시험이 잡과에 해당되었다. 오늘날 최고의 전문직으로 대우받는 의사나 법률가가 조선시대에는 기술관이라하여 문무 관리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식년시’와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실시하는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있었다. 여러 과거시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식년시,식년시 중에서도 문과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문과는 예비시..
사화란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을 사화라고 하는데 여기서 선비는 사림파를 말한다.조선에 당시 조정에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두 정치세력이 있었는데 훈구파는 많은 재물과 권력을 차지하고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이에 반해 사림파는 고려말 역성혁명에 반대 하면서 시골로 숨어 버렸던 온건파 신진 사류의 제자 들로서 조선의 정치가 안정되자 이들은 과거를 통해 조정에 등장했다.이들의 세력은 어느 틈인가 무시못할 세력이 되어 훈구파와 경쟁하게 되었는데 훈구파와 사림파가 치열한 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화이다.사화는 연산군 때부터 명종 때까지 네 번이나 일어났다.연산군 10년에 무오사화에 이어 갑자사화가 일어났다.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성종의 후궁이었다가 왕비가 되어 연산군을 낳은 사람이다 그런데 질투가..
영조의 임금의 나이가 80에 이르러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이 대리청정을 하게 되었다.이 때에 세손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이 영의정으로 있었고 동생인 홍인한 또한 정승자리에 있어 홍씨들이 득세하였다.일찍이 홍인한은 영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일 때 사도세자를 비화하지 않고 영조편을 들어 사도세자를 죽게 한 인물로서 세손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관계로 세손에게 양위하여 대리 청정케 하는 것도 홍인한은 적극 반대한 사람이다.영조가 83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세손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다음 정조는 홍인한과 정후겸등 사도세자의 참사 때 동조한 인물들을 모두 유배형에 처했다가 마침내는 사사하여 사도세자인 아버지의 원한을 풀었다.사도세자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뒤주에 갇혀 죽을 때 정조는 겨우 열한 살 이었지..
조선시대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가 오래 계속되어 김씨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벼슬을 얻으려는 무리들이 김씨에게 아첨하여 돈을 주고 벼슬을 얻어 지방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세도정치 아래서 관리들은 타락해 갔고 권세가와 줄이 닿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고 돈 주고 관직을 사고파는 일도 흔했다일단 지방관으로 임명되면 그들이 김씨 일가에게 뇌물로 준 돈의 밑천을 뽑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재물을 착취하였다.자기가 벼슬에 있을 때 뇌물 준 돈의 본전 뿐만 아니라 수십 배의 재물을 백성들에게 착취하였다.여기서 삼정의 문란이란 말이 나오는 데 삼정이란 전정,군정,환곡을 이야기 한다.삼정은 지방관들이 재물을 긁어 모으는 방법이어서 그 폐단을 나타내는 말이다.전정은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