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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삼정의 문란

처음나리다18 2020. 6. 6. 18:49

조선시대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가 오래 계속되어 김씨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벼슬을 얻으려는 무리들이 김씨에게 아첨하여 돈을 주고 벼슬을 얻어 지방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세도정치 아래서 관리들은 타락해 갔고 권세가와 줄이 닿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고 돈 주고 관직을 사고파는 일도 흔했다

일단 지방관으로 임명되면 그들이 김씨 일가에게 뇌물로 준 돈의 밑천을 뽑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재물을 착취하였다.

자기가 벼슬에 있을 때 뇌물 준 돈의 본전 뿐만 아니라 수십 배의 재물을 백성들에게 착취하였다.

여기서 삼정의 문란이란 말이 나오는 데 삼정이란 전정,군정,환곡을 이야기 한다.

삼정은 지방관들이 재물을 긁어 모으는 방법이어서 그 폐단을 나타내는 말이다.

전정은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토지 일결에 얼마씩을 징수하기로 되었는데 은결이라고 하여 법에도 없는 무거운 세금을 받았으니 은결의 경우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의 3분의1이 되었다고 한다.이뿐만 아니라 백지라고 공지에도 세금을 징수하고 도결이라고 사적으로 소비한 공금을 보충하기 위해서 정액이상의 세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리고 군정은 법대로 하자면 나이가 16세이상 60세 이하의 남자에게 군포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이법을 악용하여 지방관들이 사복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나이를 더 내리거나 또는 나이를 올려 군포를 받기도 하였다.

나이를 내려서 받는 것을 황구첨정이라 하고 나이를 늘리거나 죽은 사람의 몫까지 받는 것을 백골징포라 하였다.또한 병역의무자에게 일시불로 받는 마감채,족징이라고 하여 도망자,사망자의 체납분을 친족에게 강제로 징수 하는 등 비밀리에 행하여 진 것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모든 지방에서 행해졌으며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문란한 징수 방법에 백성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 졌다.

환곡은 봄에 농민들의 양식이 떨어졌을 때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받아 들이는 방법이다.삼정 중에서 환곡의 부정이 가장 많아 가난한 백성들이 골탕을 먹었다.

흉년이 들면 지방관들이 농민에게 대여해 준 것을 받지 못했다하여 나라에 탕감 요청을 하면 나라에서는 그대로 탕감을 해주었으나 지방관들은 이를 백성들에게 탕감해 주지 않고 그대로 받아 들이니 그들의 행패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창고에 하나도 없으면서 장부에는 있는 것처럼 꾸미는 허류,필요이상의 미곡을 강제로 대여 하여 이자를 받는 늑대,반은 겨를 썪어서 빌려주고 이자를 사취하는 반백 등으로 백성들의 불평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진주 병사로 부임한 백낙신은 더욱 가옥하게 백성들의 재물을 긁었고 약탈과 공갈로 민폐를 더욱 조장 하였다

이러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사회불안은 농민의 항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1811년 발생한 홍경래의 난은 외척세도의 부패와 탐관오리의 횡포 그리고 연이은 가뭄과 질병을 원인으로 난이 일어났다.

또한 농민의식의 확대로 인한 임술민란은 진주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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