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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호락논쟁

처음나리다18 2020. 7. 16. 04:58

호락논쟁은 충청노론과 서울노론에 의한 논쟁을 말한다.

이이의 주기론은 17세기 송시열로 계승되어 중앙정치의 학문을 주도하였다.

18세기 노론 내부에서 주기설과 주리설의 분파가 생기면서 인간과 사물의 본성을 어떻게 볼것인가를 두고 호락논쟁이 전개 되었다.

호락논쟁은 인물성이론,즉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호론과 인물성동론,즉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는 주장을 하는 낙론으로 분리 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호론(湖論)은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원진·윤봉구 등에 의하여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여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면서 이를 화이론과 연결시켜 청을 오랑캐로 조선을 중화로 보려는 명분론을 고수 하였다.

반면에 낙론(洛論)은 서울·경기도를 중심으로 이간·김창협·김원행 등의 주도인물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이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모든 우주 만물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자연과학 정신을 추구하였다.

호락논쟁에서 호론은 이후에 북벌론을 주장하면서 19세기 위정척사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낙론은 북학사상을 주장하면서 19세기 개화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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