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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처음나리다18 2020. 6. 30. 19:38


묘청은 서경 출신의 승려로 그는 고려시대 당대의 권세가인 이자겸을 제거 하는데 공을 세우고 제17대 왕인 인종의 고문이 되었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다.그런데 자기의 두 딸을 외손자인 인종과 결혼시켜 왕의 외할아버지인 동시에 장인이 된 이자겸은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이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둘렀으나 묘청에 의하여 제거 되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배경은 문벌 귀족들의 힘을 약화 시키려고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묘청은 인종을 설득했다.개경은 문벌 귀족들이 판치는 곳이니 개경 떠나 서경(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개경은 이미 기운이 다했으니 서경으로 가면 주변국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처럼 왕을 황제라고 부르고 연도도 중국을 따라 쓰지 말고 독자적으로 써야 한다는 칭제권원을 주장했다.나아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화친하지 말고 이를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에 인종은 문벌귀족에게 싫증이 나 있던 인종은 묘청의 말에 솔깃하여 서경에 새 궁궐을 짓게 하고 서경천도를 꿈꾸었다.

그러나 서경 천도는 여러 문벌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당시 개경의 문벌 귀족들에게는 서경 천도가 자신의 세력 기반을 완전히 잃어비리는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서경 천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묘청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을 토벌군의 총사령군인 김부식이 진압하면서 공신 칭호를 받고서 김부식은 최고의 관직과 명예를 얻었다.

이자겸의 반란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은 모두 문벌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극심해진 가운데 생겨난 사건들이다.

이 두 사건은 이후 무신정변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 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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