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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왜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일본이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로 야마토왜의 ‘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이라고 불린다.이러한 주장은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 수록되여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주장은 과거로의 환원이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일본인과 한국인은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 났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함께 표리 관계를 이루면서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관념적 지지대로서 기능하였다.따라서 식민 사학의 극복을 논의 할 때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임은 당연하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공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하였고 그 뒤에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 신라에 멸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년동안 한반도 남부를 지해하였다고 하면서 그 중심기관이 가야에 두었던 임나일본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왜곡 주장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보다 8년 먼저 서술된 「고사기」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일본’이란 국호도 7세기 이후에 사용되었는데 ‘일본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당시 일본은 통일 정권이 성립되지 못한 채 여러 소국의 분립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바다를 건너와 식민지를 경영할 만크강력한 세력이 존재 하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 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면 한국 측 기록이나 유물·유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발견된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왜곡은 고구려 광개토 대왕비 비문을 통하여 당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를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일본측의 해석과 다르게 앞부분의 주어는 왜 이지만 뒷부분의 주어는 고구려로 볼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왜가 신묘년에 건너왔기에 (고구려가)백제(또는 왜)를 격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해석인데 실제 이 비문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 일본의 칭송을 위한 것이 아니며 광개토 대왕비이기에 당연히 곳곳에 당연히 곳곳에 주어를 생략하고 있다.그리고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 여러 사진·탁본·해독문을 조사한 후 일본 육군 참모부에 의해 상당한 비문 변조가 행해 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도 있기 때문에 비문자체의 내용조차 그 신빙성이 의문시 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칠지도에 대하여 일본은 억지 주장을 하고 있으나 당시 백제왕의 신하로 간주되던 왜왕에게 준 백제 하사설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