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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삼별초의 난

처음나리다18 2020. 6. 4. 18:21

고려시대 특수군은 정종때 거란족 방어를 한 광군,숙종때 윤관의 건의에 의해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구성된 별무반,삼별초,우왕때 왜구에 대비하여 양민과 천민의 혼성부대인 연호군이 있다.

정치적으로 정방을 통하여 인사권을 장악하고 군사적으로 도방과 삼별초를 세력기반으로 한 최씨무신정권기 최우 무신정권시 삼별초의 난에 대하여 알아보자.

배중손의 삼별초의 난은 강화도에서 시작하여 진도,거제를 거쳐 제주도로 옮겨 가면서 몽골과 투쟁하였으나 결국 마지막에는 탐라 제주에서 진압되었다.

삼별초란 최씨 무신정권의 최우가 집권하고 있을 때 도둑이 들끓자 용사를 모아 매일밤 도둑을 순찰하고 단속하는 임무를 맡기고 야별초라 부르던 것이 그 시초이다.그후에도 도둑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그 기구를 확대하여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고 몽골과 항전하다 그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쳐 돌아온 자들을 모아 신의군을 조직하여 좌별초·우별초·신의군을 삼별초라 하였다.

이들은 최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병이었으나 경찰·전투 등 공적 임무를 수행하여 공적인 군대에 준하였다.

1232년 고종때 몽골의 침략을 피하여 최씨 정권이 정부를 이끌고 강화도로 천도한 뒤 몽골과의 항전은 삼별초군에 의해 강행되었다.

1259년 고려의 태자 전이 부왕 고종을 대신하여 몽골 조정에 들어가 회의 한 것을 계기로 출륙문제 즉 개성으로 천도 하는 문제를 가지고 문신들과 대립하게 되었는데 무신들의 반대에도 천도가 단행되자 삼별초의 지휘관 배중손은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난을 일으켰다.

배중손은 강화도에서 몽골군의 반격을 피해 강화도에 남아 있는 귀족과 고관의 가족들과 공사재물을 싣고 진도로 이동하였는데 이때 동원된 배가 1천여 척이 되었다고 한다.

진도로 이동한 삼별초는 강력한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해전에 약한 몽골군을 압도할 계획이었다.

이후 얼마되지 않아서 거제,탐라 등을 비롯한 30여 도시를 삼별초의 세력권에 넣어 해상왕국을 이루었으나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 의한 토벌 작전에 3년간의 항쟁은 끝나게 되었다.

1270년 고려 조정에서는 김방경 전라도초토사에 임명하여 진도에 있는 삼별초를 토벌하도록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그 다음해인 1271년 몽골군 지휘관인 홍다구와 김방경의 고려·몽골 연합군의 총공격에 의해서 왕으로 옹립되었던 승화후 온은 홍다구에 의해 죽고 삼별초 지휘관인 배중손은 전사 하였다.

이후 삼별초는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김통정을 수령으로 하여 탐라(제주)로 본거리즐 옮겨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12732월 김방경·혼도·홍다구에 의한 고려·몽골 연합군에 의해서 진압되었는데 수령 김통정은 산속으로 피신 하였다가 죽고 나머지 13백여 명은 포로가 되어 완전히 삼별초 난은 평정되었다.

고려시대의 중앙군은 국왕의 친위대인 2군과 6위로 구성되었고 지방군은 5도에는 주현군과 양계에는 주진군으로 구성되었다.

중방은 26위의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되어 무신최고의 합의기구로 무신정권이후 권력의 중추 기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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